어떻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느냐고?
어떻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느냐고?
거기에 대한 대답은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다.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아무리 마음을 비워보려고 해도 비워지지 않는다.
본인이 정신과 의사이지만
전혀...
책을 읽어도,
발가벗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나이가 드니
자연을 보고 위안을 삼고 감사함을 느낀다.
자세히 듣지 않아서 대충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글쎄
분명 많은 시청자들은 공감을 할 것이고,
특히 아무리 노력해도 욕심이 없어지지 않고 비워지지
않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대부분 마음을 수련시키는
지도자들은 우후죽순으로 많다. 문제는 절대 그렇게 해서 생각을
단련시켜서 취사선택을 하는 것은 결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가 없다.
이 마음에서 항상 저 마음으로 도망을 가는, 차안에서 피안으로 가는 것이다.
항상 목표지점이 있고 그래서 지향해 나아가는 길이 있게 된다.
얼마나 힘든가?
법은 관용어적 표현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는 우리가 생각하는 곳에만 있다.
중요한 것은 '있다'라고 아는 것이지, 있는 것(어떤 대상)이 먼저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이 마음, 마음이라는 것도 하나의 '상(想)'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상', 이 마음이 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이 상이, 이 마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그런 질문에 정말 발가벗어야 한다. 한오라기의 먼지도 없이,
이것은 누구나 쉽게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이 공부에 외면하지 않으면,
이런 방송을 보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원래 있는 이것을 알 수 있다.
이 소리는 침묵의 언어이다.
침묵이라고 하면 또 말하지 않는 것을 침묵이라고 우리는 또 '상'을
가지지만,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만, 말과 상관없이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는 게 침묵이다. 온갖 단어와 생각과 말들은 모두 여기에 녹아버린다.
무슨 할 말이 있는가? 단지 이뿐, 그래서 우리의 언어로 편안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제껏 마음에 휘둘려서 이리저리 힘들게 살아왔는데, 알고 보니 마음이라는 것은
없는 것인 거라. 봄 햇살에 화초가 파릇파릇 햇빛을 받는데, 원래 이뿐이라.
햇살에도 아무런 마음이 없고 화초에도 아무런 마음이 없어,
이 벽에도 아무런 마음이 없어, 그런데 누가 마음을 찾고 있지?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향수)
누구든 이 노래를 들으면 따라갑니다.
도시에서 살든, 촌에서 살았든, 외국에서 살았든,
생각은 따라가지만
절대 안 가는 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노래를 계속 부를 수 있지,
안 그러면 다음 소절을 어디에서 부를 수 있습니까?
이것, 이것을 알아야 편안하게 할, 그렇게 노력해야 할
마음이라는 게 없어집니다.
이게 구지의 한 손가락이고,
이 커피잔입니다.